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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9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시 4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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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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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9(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시 42:1~11

[고라 자손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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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말부터 본격적으로 코로나19의 영향이 이 나라를 뒤덮고,

3월 초부터 지금 2021년 새해를 며칠 앞둔 오늘까지 긴 시간을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제한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이지만 그것은 서로 잠시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어 

감염병의 확산을 막아보고자하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1주, 2주, 한달,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물리적 거리두기를 넘어서 여러 부분에서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선생님과 학생들 간의 거리, 교회에서 성도들 간의 거리 그리고 그 안에 있던 교제의 모습,

더 나아가 성도 개개인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시인이 처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는 신뢰의 고백을 하는 내용입니다.

 

 

1. 탄식의 상황

 

1) 주님을 갈급해 함

 

  1절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절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지금 이 시인은 하나님을 갈급해하는 가운데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사슴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사슴이 물을 찾아 메마른 광야를 헤매어 뛰어다니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그 힘이 다해 헉헉거리며 목말라하는 모습, 이것이 지금 시인이 하나님을 갈망하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갈급하다’로 번역되는 단어는 목마름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목말라하는 모습뿐 아니라, 목마름 때문에 숨을 헐떡이며 울부짖는 모습도 나타냅니다.

사슴이 물이 없어 고통을 겪듯이, 시인은 우리의 생명 되신 하나님 그분과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하여 울부짖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과 시인의 관계가 멀어져 있는 상태이고, 그것이 그의 고난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2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는 간절함을 나타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의 얼굴을 친히 뵙기를 소원합니다.

‘나아가서’라는 말은 ‘들어가서’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이 당시에 하나님을 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전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그곳에 역사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 주님과 멀어져 있는 시인의 상황

 

  6절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시인이 헤르몬과 미살 산에 있다고 말합니다.

헤르몬과 미살산, 이 곳은 시인이 실제로 처한 장소가 그곳임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지금 그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성전, 하나님의 거하시는 그곳에서부터 멀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헤르몬산은 요단강물이 시작되는 근원지로, 이스라엘 땅중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입니다.

미살산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지역을 의미할 수도 있고, 

그 이름의 의미 “작고 보잘 것 없다”는 의미 그대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위대한 시온산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작은 산, 곧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한 곳을 상징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그는 지금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 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9절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물리적으로도 떨어져 있지만, 지금 시인이 처한 상황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지키시고, 나를 대신하여 싸우신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어두워진 상태입니다.

 

3) 원수의 조롱

 

또한 시인은 원수의 공격, 원수의 압제 가운데 있습니다.

 

  10절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3절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원수들의 공격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위협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네가 그렇게 갈망하고 의지하는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말로 조롱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과 떨어져 있음도 힘든데

하나님이 나에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 상황을 보며 나를 조롱하는 원수의 공격이 나를 힘들게 하여

밤 낮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전에 좋았던 일을 떠올립니다.

 

  4절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과거에 시인에게는 자기의 마음을 쏟아내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찬양하였던 모습이 있었습니다.

기쁨, 즐거움으로 남아 있는 그 일을 회상합니다.

많은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의 절기에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서 환호하고 찬양하였던 그런 기억이

지금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고,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 현실과 비교할 때에 큰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동시에 언젠가 다시 한 번 이런 기쁨과 찬양과 환호,

주님과 함께 하는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소망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시인의 모습 오늘 우리와 같습니다.

교회 당에 나와서 온 성도들이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께 찬양하고 예배했던 것

올해 초까지만 해도 우리들에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방송으로 예배하고, 일부분만 교회에 나오고

얼마동안 아예 교회에서 모이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코로나의 상황은 언젠가 마쳐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이전과 같이 함께 모여 예배할 그 때를 소망하고, 

그것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소망을 담아 시인은 고백합니다.

 

 

2. 소망의 결단 

 

  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11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결국 이 시인이 고백하기 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눈 앞의 현실은 그렇습니다. 불안해하고 낙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에서 불안해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스스로에게 명령하며 권고하고 있습니다.

자기 영흔에게 명령하는 이것은 자신의 결단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자, 비록 내 상황은 이렇지만 이전에 분명히 하나님이 나에게 보이셨던 것, 

나와 관계했던 것처럼 그 날이 분명히 그 날이 다시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타나셔서 분명히 도우시고 지키실 것이므로 하나님께 찬송하자, 하나님을 높이자’

고 결단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 바랍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 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예배당에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우리는 예배당에 나와서 주님을 찾는, 주님을 쫓기 보다

이전과 같이 나의 몸과 마음을 드려 주님의 뜻을 더 알기를 소망하기 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거리두기으로 인해 생긴 이 상황에서 오는 편안함으로 인해

교회에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되어도 점점 그것을 추구하게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TV, 휴대폰으로 예배하다 보니 편해져서, 그것을 추구하게 되고,

우리 교회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다른 목사님들을 통해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핑계하며

점점 나의 영혼이 편안함을 추구하며 나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한 교회발 집단감염이라는 이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조롱하고 욕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그것이 우리를 교회로 나오기를 두렵게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비록 이런 특별한 상황으로 인해 우리가 교회당에서 모이지 못하지만

여전히 주님은 내 안에 계셔서 우리 안에서 여전히 일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당에 나오기를 힘쓰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님을 찾기에 더 갈급해 하기 원합니다.

예전에 주일에 예배당에 나오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처럼 그렇게 믿음 생활했던

그런 마음으로 이 시간들을 지켜나가며

다시 모이게 되었을 때에 더욱 감격하고, 감사하며 주님 앞에 예배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 바랍니다.

 

그렇게 주님을 찾을 때에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은 어렵지만 그 때에 실망하고 좌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것을 이기고 그 이후에 회복될 상황을 바라보며 소망하는 것

그것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입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분, 우리의 하나님 

이 질병, 이 자연의 문제까지도 능히 다스리시는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소망을 둠으로

오늘 우리가 당하는 이 상황들을 견디고 이겨 나가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