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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4 물 없는 샘을 벗어남 벧후 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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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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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4(목)

 

“물 없는 샘을 벗어남”

 

벧후 2:10-22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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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계속해서 거짓 선생들에 살펴보고 있습니다.

거짓 선생들은 교회 안에 들어와 성도들로 하여금 진리가 아닌 자신의 생각, 욕심대로 살아가도록 유혹합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거짓 선생들이 어떤 자들인지 설명합니다.

 

 

1.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음

 

10절 ~22절에 걸쳐 연속적으로 거짓 교사들의 삶의 모습들을 전합니다. 

이것들은 한마디로 진리와 말씀의 가치가 아닌 이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10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이들”은 거짓 선생들 입니다. 그들이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는다고 합니다.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들은 죄악을 범하는 것에 담대하여 자신의 정욕, 욕심을 채우는 것에 몰두하고 추구하였습니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악한 천사’ 들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과 달리 

이들에 대한 평가를 스스럼없이 다른 사람을 향하여 마치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채우진 마냥 비방, 판단하는 말을 내뱉고 삽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권세있는 자 처럼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권세를 준 것처럼 교만에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모습을 베드로는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짐승은 이성이 없이 주어진 본능에 따라 살아갑니다.

이들이 모습이 그러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실체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비방하고, 힘이 없으면서 힘있는 척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행실은 ‘그리스도의 형상’ 으로 새롭게 회복된 성도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지음 받은 그 본래의 가치까지도 상실한 더 비약된 상태 입니다.

 

거짓 선생들의 무지함은 본능을 따르는 것입니다.

“잡혀 죽기 위하여 난 것 같이”, 그들의 마지막은 죽음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을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신들이 행한 악한 행동에 대하여 ‘악한 보상’, 죽음을 얻게 됩니다.

 

 

2. 탐욕적, 음란한 삶

 

본문 13절 하반절부터 16절까지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탐욕적이며 음란한 삶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 거론한다.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이들은 본능에 충실하여 대낮에도 먹고 즐기면서 자기들이 원하는 쾌락을 추구합니다.

이것이 성도들에게 본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신앙 공동체에 있어서 ‘점과 흠” 이 됩니다.

 

이들의 눈은 ‘음심’로 가득 차 있어 공공의 잔치 자리에서 음욕을 채우기 위해 여인들을 바라볼 뿐이고,

그들의 잘못된 사상들은 자신들의 부도덕적 삶을 합리화하는데 사용하고,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도 이런 방탕한 삶으로 이끌어 옵니다.

이와 같은 거짓 교사들은 분명 ‘축복의 사람들’인 하나님의 자녀와는 본질상 다른 “저주의 자식”와 같습니다.

 

2) 발람의 예 

 

  15절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절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거짓 선생의 대표로써 민수기 22~24장에 나타나는 발람의 예를 들어줍니다.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여 발람에게 찾아와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해달라고 요청하여, 

함께 나아가던 길에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들고 길을 막아 선 것을 보았습니다. 

발람이 가는 것이 여호와께서 인정하지 않은 길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에는 그 입에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말이 아닌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말로는 하나님의 말을 하겠다 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따라가는 모습

그것이 바로 거짓 선생들의 모습이라 합니다.

 

  17절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거짓 교사들은 ‘플 없는 샘플’과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 들”로 비유합니다.

“물 없는 샘”은 인생의 만족과 행복을 가르치고 약속했던 그들의 교훈과 삶이 결국에는 모두 허황되고 거짓된 것임을 의미합니다. 샘은 물이 솟아나오는 곳인데 물이 없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있어야 할 것이 비워진 상태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 는 이들의 불안정한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변하지 않는 것과 다르게 이들의 가르침이 얼마든지 쉽게 변하고 떠내려 갈 수 있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결국 거짓 선생들의 모습은 한 마디로 이렇게 설명됩니다.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경건의 형태는 있지만 그 능력은 없는 껍데기일 뿐이니 그들에게서 돌아서야 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실체는 “멸망의 종들”이기 때 문에 이들의 가르침과 삶을 따르는 자들 역시 “멸망의 종들”이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거짓 선생들은 그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와 우리 성도들 개인과 교회를 흔들어 놓습니다.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자를 두루 찾는다” 함과 같이 우리들에게 나타나서 우리의 약점을 가지고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떨어뜨리려 합니다.

이 내용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깨어서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교회는 우리가 믿는 바가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해 분명히 배우고 깨닫고, 붙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바른 고백은 무엇인가? 우리 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쫓는 사람들인가?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 가운데에서 의를 드러내며, 성화되어 가는가

분명히 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외부적으로 사회에서 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들어와서 교회를 흔들어 놓는 거짓 선생들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몸된 교회로 세워져 가기 위하여

주님을 더 알고, 말씀을 더 알기 위해,

말씀의 능력 가운데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물 없는 샘,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의 반석 위에 굳건하게 믿음의 집을 세워가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