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8 아리엘과 같이 되려는가? 아리엘로 남으려는가? 사 2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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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8(화)
“아리엘과 같이 되려는가? 아리엘로 남으려는가?”
사 29:1~14
1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2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그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3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너를 에워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4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이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이리라
5 그럴지라도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날려 가는 겨 같으리니 그 일이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날 것이라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7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 곧 아리엘과 그 요새를 쳐서 그를 곤고하게 하는 모든 자는 꿈 같이, 밤의 환상 같이 되리니
8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 시온 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같으리라
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
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11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12 또 그 책을 모르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니라
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세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14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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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쓰나미가 덮쳐서 후쿠시마의 원전이 터지고 수많은 피해가 있었을 때,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전파되기 시작했을 때,
나라 안에 혹은 세계적으로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수많은 우상을 섬기는 일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중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개인적인 고백의 차원에서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다 라고 못 박아서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선지자들에게 심판을 예언하신 시대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인지 아닌지 여부보다 우리가 더 집중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들에게 베풀고 계시고,
그 일 속에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러한 상황들 속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빛을 드러낼 것인가 말입니다.
1~4절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던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의 메세지입니다.
1절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아리엘”은 그 단어 자체로 다른 의미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특별히 예루살렘을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뒤어어 나오는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라는 것을 통해 분명해집니다.
이스라엘에서 절기는 제사일이자 그 온 백성의 축제일입니다.
지금 하나님 앞에 정해진 절기를 지키며 축제를 즐기고 있는 백성들
그들 앞에 놓인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2절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그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을 괴롭게 하시겠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아리엘)을 심판하시면서 왜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하셨을까요?
2절 뒤에 나타난 “아리엘”은 앞서 나온 아리엘과는 다릅니다.
그것의 원래 의미대로
에스겔 43:15-16에서 처럼 봉헌 제물을 태우는 제단의 가장 윗부분, 번제단의 화덕을 가리킵니다.
아리엘 예루살렘이 번제물을 사르는 성전의 제단, 아리엘처럼 된다는 의미입니다.
축제를 즐길 수 없는 분위기로 바뀝니다.
그런데, 5절~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내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민족들에 대한 심판의 메세지를 전합니다.
5절 그럴지라도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날려 가는 겨 같으리니 그 일이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날 것이라
6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하나님은 언제라도 원하시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수가 있고 막강한 열방을 겨와 같이 날려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잠깐의 구원과 희망을 경험할 백성들에게 또 다시 심판의 메세지를 전하십니다.
여기에서 봐야할 것은 그 심판의 핵심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느냐 입니다.
13절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세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하기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 말하지만
그들의 하나님 경외함이, 그들의 신앙이 가르침 받은 지식에(머리에) 머물러있을 뿐이라 합니다.
그들의 온전하지 못한 믿음, 말뿐인 신앙, 형식 뿐인 신앙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는 것에,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이 그들 안에 있다는 것에 매우 자부했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뵙는 곳이기에,
성전이 그들에게 있음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보호하심 안에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자부심은 지나쳐서 성전과 제사를 지내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은 심판으로부터 무사하다는 맹신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수백, 수천년을 이어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들의 제사와 신앙에 대한 전통, 형식이 그들 마음 속의 경외함을 대체해버렸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평하십니까?
(사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내 마당만 밟는다…
성전에 나와 제사를 지내며,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지만 실상은 마당만 밟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는 행위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하십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외식과 같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도 돌아봐야할 것입니다.
오랜 시간 혹은 부모님 세대부터 교회에 드나들며 신앙생활을 해온 우리들은 어떠한가요?
기독교 신앙이 하나의 문화, 습관이 되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습관에 따라 교회에 와서 앉아서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배운대로 헌금하고,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서 어느 때와 다름없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크게 구별되지 않게 살아가면서
‘나는 예배 드렸어’, ‘나는 교회에서 이런 직분이야’, ‘나는 이렇게 봉사도 해’ 라고 안심하고 위안삼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교회에 나올 때에나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에나 우리의 중심이 어떠한지 잘 아십니다.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예루살렘을 향한 메세지는 심판에서 구원, 그리고 다시 심판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 끝은 어떻게 될까요? 역사적으로 그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메세지는 어떠한가요?
하나님의 백성 아리엘로 남을까요?
아니면 불사르는 제단의 화덕, 아리엘로 될까요?
하나님의 심판의 궁극적인 목적은 벌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 열방이 돌이키고 주님 앞에 나오기를 바라십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우리의 모임, 우리의 예배가 제한되고
그로 인해 우리의 믿음이 위축되는 상황입니다.
교회에 대한 비판이 폭격과 같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이런 상황을 통해서 그들을 택하셨던 하나님께 심판의 메세지를 받게 되는 이스라엘과 같이
형식과 습관에 따르는 신앙, 성전의 마당만 밟아서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 그런 모습에 머무르지 않고,
나의 믿음을 돌아봄으로
예배당에서 나와 예배할 때는 더욱 더,
그리고 예배당 밖, 집이나 내가 있는 다른 곳에서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를 끊임없이 노력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런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