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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31 내리막에서 일어나는 믿음 사 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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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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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31(월)

 

“내리막에서 일어나는 믿음”

 

사 39:1~8

  1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2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

  3 이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묻되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왕에게 왔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이르되 그들이 원방 곧 바벨론에서 내게 왔나이다 하니라

  4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들이 내 궁전에 있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내 창고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 보물이 하나도 없나이다 하니라

  5 아시아갸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6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7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

 

 

———————————————————————-

 

 

흔히들 인생곡선을 보면, 여러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고 말합니다.

누구나, 또 언제든 내리막의 시기가 있으면, 다시 차고 올라가는 때가 있고,

끝없이 차고 올라가는 것 같으면서도 언젠가는 내려오는 시기가 있다는 것이죠.

 

우리의 신앙인들의 믿음의 곡선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은혜로 충만한 상태였으면 좋겠지만,

언제 그랬냐는듯이 암울하고 어두운 때를 지나갈 때도 있습니다.

 

오늘 여러 번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며,

은혜 충만, 기쁨 충만한 상승가도를 걷다가 하루 아침에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1. 친절과 인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찾아온 유혹

병에서 나은 히스기야 왕에게 사신을 보낸 바벨론 왕

 

  1절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그 때에”라는 말로 시작되는 것은 이 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앞선 장에서 일어난 사건과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38장을 보면, 죽을 병에 걸린 히스기야 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고,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히스기야 왕에서 죽음을 준비하도록 말씀하십니다. 

 

그 때 히스기야 왕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합니다. 간구합니다. 하나님께 치유의 역사를 구합니다. (38:2~3)

그리고 히스기야의 눈물의 간구를 들은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그에게 15년의 생명을 더해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게다가 예루살렘을 앗수르의 손에서부터 구원하실 것도 약속하십니다. (38:5~6)

 

3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명을 치심으로 유다에 기적적인 구원을 베푸셨는데, 이어서 38장에서는 히스기야 왕 개인적으로 죽음에서 생명을 얻은 일이 이어졌습니다.

나라적으로나 히스기야 왕 개인적으로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여 그래프로 치면 상승세를 치고,

높은 곳을 치고 있는 때였습니다.

그 때,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왕 므로닥발라단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회복의 소식을 듣고 유다에 사신을 보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왕은 그 사신들을 맞이합니다.

이웃 나라의 왕이 병들었다가 회복됐을 때 사신을 보내 축하하는 일은 일반적입니다.

별로 특별한 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왕이 남유다에 사신을 보냈다는 것, 그것이 특별한 것입니다.

왜그럴까요?

당시 바벨론은 앗수르 만큼은 아니었지만 동쪽에서 떠오르는 신흥 강자였습니다.

앗수르도 인정해주는 명망있는 나라였습니다.

반면에 유다는 성경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이지만 세계의 정세로 볼 때 그저 애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나라였습니다.

다윗 왕때와 같이 강한 국력을 가졌을 때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바벨론의 입장에서 크게 관심도 없었을 나라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바벨론 왕이 유다 왕의 회복을 축하하려고 사신을 보낸 일이 없습니다.

 

그런 유다에 사신을 처음으로 보냈다는 것,

바벨론 왕에게 숨겨진 의도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바벨론에 있어서도 앗수르라는 나라는 매우 골치 아픈 강한 나라였습니다.

이전보다 힘을 모으고, 강해졌다 하더라도 내부적으로도 왕위가 여러 번 바뀌고 있던 바벨론에게 있어서 앗수르는 아직 혼자의 힘으로 대항하기에 부담스러운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애굽과 손을 잡고서 앗수르에 반기를 들고 있던, 

또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대 185,000명을 몰살시킨 그 나라의 왕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고 하니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눌 좋은 기회였던 것입니다.

 

동맹이라는 빌미로 참 왕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닌

세상에서 강한 나라와 손을 잡고, 그들의 힘을 의지하여 자신들 앞에 놓인 위기를 해결하려했던 그 유혹이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2. 유혹의 미끼를 물어버린 히스기야,

  1) 사신들에게 유다의 전부를 보여준 히스기야

바벨론의 사신들을 맞이하는 히스기야 왕의 태도는 어떤가요?

 

  2절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

 

매우 기뻐하며, 그들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매우 친절하게(?) 자기들의 속을 다 보여줍니다.

얼마나 재물이 많은가, 또 우리에게 어떤 군사적인 힘이 있는가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전부 보여주었습니다.

그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요?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그 나라의 지도자가 조그마한 우리 나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를 인정하고, 손을 내밀고 있다.’

 

보여지는 그것에 취해 다시 자기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들에게 보여준 구체적인 항목들과 “히스기야가 그들에게 보이지 않은 것이 없다”는 짧은 표현은 히스기야가 얼마나 완전히 그 유혹에 빠져들었는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애굽의 손을 잡고 있다가 하나님께 크게 혼났던 히스기야가 

다시 바벨론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 하는 것입니다. 

 

 2) 이사야의 질문과 히스기야의 대답 (3~4)

 

  3절 이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묻되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왕에게 왔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이르되 그들이 원방 곧 바벨론에서 내게 왔나이다 하니라

  4절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들이 내 궁전에 있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내 창고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 보물이 하나도 없나이다 하니라

 

선지자 이사야가 왕에게 찾아옵니다. 이사야의 질문을 보면,

그가 모든 사정을 다 알고 질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질문의 의도는 어떤 대화가 오갔고, 어떻게 했는지 구체적인 상황을 듣기 위함이 아님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여전히 깨닫지 못합니다.

자아도취 되어, 자신의 무용담을 풀어내기 바쁩니다.

세상의 유혹으로 인해 다시 눈이 어두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다시 내리막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 결과는 어떤가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3)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

 

  6절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7절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사신들에게 보이며, 과시하던 그 많은 재물들

자기 당대 뿐 아니라 그의 조상때부터 모아놓았던 재물의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바벨론으로 옮겨집니다.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와 나를 인정해주는 그 가면을 쓴 바벨론 사람들의 손에 의해 약탈당하게 됩니다

그것 뿐 아니라 히스기야에게서 태어날 자손들 중에 바벨론에 잡혀가 그들을 섬기는 사람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택한 바벨론 왕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택하여 예루살렘을 통치하게 하신 그 다윗의 후손이 포로로 끌려가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됩니다.

한 번의 유혹에 넘어간 그 결과가 너무나 처참합니다.

 

 

히스기야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고, 

유다의 왕들 중에 그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한 사람이 없었다고 인정되는 왕이었습니다. (왕하18:3-6)

또한 앞서, 37장과 38장에서 정치적으로나 히스기야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하심을 경험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도 한 명의 사람이었습니다..

 

죄의 유혹 앞에 쉽게 무너졌습니다.

이런 모습은 비단 히스기야에게만 있는 모습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유혹 앞에서 자유하지 못합니다.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연약합니다.

세상의 유혹에 너무나 쉽게 빠져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화려해지고, 누릴 것이 많아진 오늘,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뜨리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그것이 유혹의 길, 내리막 길인지 생각조차 못한 채 넘어지게 됩니다.

 

 

 3.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히스기야의 반응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유혹으로 인해 내리막으로 내려간 뒤,

하나님의 메세지를 들은 이후의 히스기야의 반응입니다.

 

  8절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메세지에 대해서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하며 반응합니다.

‘좋다’는 “선하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메세지를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죽음의 메세지를 들었을  때는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며 뜻을 돌이키시기를 구했는데, 

지금은 그 때와는 다릅니다.

 

히스기야는 서슴지 않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불순종으로 인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결정이 당연하고,

하나님의 뜻이 선함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 역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뒤에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자신의 죄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을 선포하였을 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리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이에 덧붙여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며,

자신이 받아 마땅한 처벌을 하나님께서 완화해 주신 것을 두고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장에라도 원수들을 일으켜 나를 이 나라에서 쫓아내실 수도 있지만 지금은 나를 살려 주시고 지체하시는 구나’

그리고 나에게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후손들에게도 그 자비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심판의 메세지로 인한 걱정과 두려움이 아닌, 자비하심으로 인한 평안과 견고함을 누립니다.

이것이 “그의 전후 유다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다”고 인정된 히스기야의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죄로 물든 연약한 몸을 입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수시로 변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의지도…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인하여 그럴 일이 절대로 없을 듯이,

하나님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은혜로 감사하며, 기뻐하지만

한 순간 유혹에 넘어지고,

나를, 내가 가진 것을 드러내어 인정을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전혀 계시지 않은 것처럼 잊어버리고 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런 우리들이 모이는 교회 역시 완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인의 모습은

완벽하게 죄를 짓지 않고, 실수하지 않고 바른 길로 가는 것이 아닌

때로 실수하고, 때로 내리막을 갈 때도 있지만

그 때,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허히 자신의 약함을 깨닫고,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유혹에, 올무에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로서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그렇게 기다리시고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인하여

평안을 누리고, 견고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