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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6 선지자는 왜 자꾸 우는가? 사 3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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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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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6일 매일성경] 

 

선지자는 왜 자꾸 우는가? 

 

사35: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사35: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사35:3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사35: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사35: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사35: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사35: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사35: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사35:9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사35: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는 것을 볼 때에 구속함의 노래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의 영광 볼 때에 모든 괴롬 잊어버리고 거룩한 길 다니리.

거기 거룩한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

마른 땅에 샘물 터지고 사막 물이 흐를 때 기쁨으로 찬송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찬송가 233장 황무지가 장미꽃 같이

의 찬송 가사입니다.

이 찬송을 부를 때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집니다.

성도들의 만면에도 화색이 가득하여 소망과 기쁨의 합창을 부르게 됩니다.

 

“거기 거룩한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

 

오늘 이사야 35장은 에돔에 심판 명령에 이어 부른 선지자 이사야의 희망가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이사야 말씀을 받으면서

맹렬한 경고와 무서운 심판 메시지가 선포되고

뒤이어 회복의 노래, 소망의 노래가 이어짐을 반복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 공의를 통과하되 그것을 초월하시는 사랑과 긍휼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의 신탁(예언)을 증거하는 선지자 역시

이러한 하나님의 애끓는 정서를 반영하지 않고서는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신랄히 지적하는 예언자적 비판과 아울러,

백성을 마음 깊이 품는 파토스적 포용을 보여 줍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회복의 선지자 에스겔도 그러했습니다.

이 이사야 선지자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애끓는 성품을 자신의 온 몸(말, 인격, 성품)으로 보여 줍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예언은 협박하고 겁을 주는 일이 아니라,

죄로 범벅된 더러운 민낯을 직면하고 그로 인한 고통을 받게 하되

그 고통과 함께 살며, 함께 자라가는 열망으로

선지자의 생애(가족, 목표, 열정) 전부를 바칩니다.

 

하나님을 위해, 백성들을 위해서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선지자에게 자신의 생각, 자신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순종, 백성들을 향한 헌신만이 있습니다.

 

선지자의 맹렬한 심판 선고, 뒤이은 회복과 희망의 노래 

어쩌면 이처럼 이중인격인 듯한 그의 역설과 반전에는 

이러한 선지자의 눈물이 있습니다.

 

또 이러한 이율배반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 데에는

이런 선지자의 고통스런 운명이 배경지워져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또 그런 선지자의 삶을 사셨습니다.

주님은 공의의 심판대로 우리를 이끄셔서 슬퍼하게 하시고 절망하게 하시지만,

그러나 자신이 친히 어린양이 되시고, 포도주가 되어 주십니다.

 

마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만이 참된 하나님의 위로를 알 것이다.

죄로 고통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참된 회복을 경험할 것이다.

그것이 성도의 복 이라 ... 고 선언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위로를 위해 하나님은 지금껏 선지자에게 심판을 선고하게 하셨습니다.

진정한 회복,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복됨과 풍성함을 누리도록 하기시 위해

죄의 종말에 마주서게 하셨던 것입니다.

 

목회자가 선지자(죄를 지적하는)의 사역을 해 서는 안되고

제사장(품어주고 중재하는) 사역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 둘은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죄를 드러내는 말씀 사역에서 참된 위로를 보시기 바랍니다.

심판의 메시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본심을 읽어내시기 바랍니다.

 

이제 곧 시작됩니다.

사40: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40: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오늘 이 구속받은 자들을 위한 노래는 이러한 하나님의 애끓는 사랑, 선지자의 자기 죽음의 정서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사35:9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사35: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