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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0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5일] 가장 고상한 장난감 막 15: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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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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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5:16–32

 

16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 (번역하면 해골의 곳) 에 이르러 

23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24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없음) 

29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 도입  

고난주간 다섯째날 새벽이 밝았습니다. 

‘가장 고상한 장난감’ 이란 제목으로 말씀 전하겠습니다. 

고상한 장난감? 말이 안 맞지요? 

장난감은 장난감이지? 고상한 장난감이라...고귀한 장난감이라.. 

 

저희 집에 장난감이 많습니다. 자동차, 기차, 비행기, 로봇 ... 제 아들꺼죠. 

누가 거저 준 것부터, 할아버지가 사준 비싼 레고 블럭까지 다양하게 있습니다. 

이 장난감은 그냥 장난감 일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왜 그렇죠?

 

저에게도 어렸을 적 장난감이 있었습니다. 

딱지, 구슬, 병따개 ... 그 중 제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제가 찾지 않으면서, 수없이 이사하면서 쓰레기장으로 향했습니다. 

그야말로, 장난감 가치는 살 때 뿐입니다. 길어야 2주... 

그 이후 한 장난감의 귀함은 다른 장난감으로 대치됩니다. 

그만큼 장난감은 아주 하찮은 것입니다. 

 

 

저희 아들의 입장에서야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난감 입장에서 생각해볼까요? 짧으면 한 2시간, 길어야 2주만 사랑받는다, 

그 후에는 그 가치가 쓰레기장으로 향하다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까? 참으로 모욕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고난주간에 장난감되신 주님을 만납니다. 

바로, 오늘 본문 말씀에서 만나는 예수님은 하찮은 장난감이 되셨습니다. 

쓰레기장으로 향하는 장난감이 되셨습니다. 

 

 

▣ 서론

여러분도 살면서 얼마나 상심하는 경우가 많습니까? 

누군가가 나의 자존감에 기스를 내고, 형편과 처지가 자괴함을 만들어 냅니다. 

상처난 감정, 파괴된 자존감, 

어느 영화 대사가 있죠?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그런 일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성실해도 결과로 평가받는 세상, 

1등만 기억하는 오늘 세상에서는 아주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곤 

모두가 비교하고 비하하는 장난감이 되어 버립니다. 

 

 

소위 갑질이란 단어, 헬조선,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은 

스스를 비하하고, 하찮게 여기는 시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편향된 기사들, 거기에 달린 악플들은 이 세상이 참으로 상처로 가득한 곳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넌 왜 그거 밖에 못하니? “그러니까 니가 그 모양 그 꼴이지..” 

그 자체로 모욕감을 주는 말들이죠.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 걸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다른 이에게도 하찮은 상표를 매깁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정당한 소리가 아닙니다. 

왜냐? 여러분을 대신해 비난의 화살을 맞으신 분이 여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죄책감, 수치가 이미 벗겨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수치를 벗기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수치를 벗기시기 위해, 주님이 친히 그 더러움을 뒤집어쓰셨습니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 본론 : 

조롱받으신 주님

빌라도에게 재판 받으신 주님은 집행유예, 기소유예도 없이 즉결처분을 받으십니다. 

곧바로 브라이도리온 이라는 헤롯의 뜰로 넘겨져서 모진 고문을 받고 사형집행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도무지 하나님으로서, 아니 기본적인 인권도 생각할 수 없는 잔인 조롱을 받으십니다. 

 

(1) 조롱하는 군병들

먼저 군병들의 조롱이 시작됩니다. 16-20절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수치스런 대관식이 시작됩니다.

유대인의 왕, 예수를 조롱하는 왕 퍼포먼스입니다. 

왕의 상징인 자색옷을 주님께 입히고, 

주님 머리에 가시로 만든 왕관을 씌웁니다. 

군병들이 장난치고 있는 겁니다. 

마가복음 15:18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놀리는 거죠. 주님의 심정, 그 자존심이 어떠하셨을까요?

마가복음 15: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주님의 머리를 ...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합니다. 

갈대로, 주님의 머리를 톡톡 치는 겁니다. 얼굴에 침을 뱉고 그래 놓고는 또 절을 합니다. 세상에 이런 수치심, 모욕감이 어디 있을까요? 

주님이라고 자괴감이 들지 않으셨을까요? 

 

골고다에 도착해선 예수님을 벌거벗깁니다. 수많은 무리 앞에 주님의 알몸을 드러냅니다. 그러고는 벗겨버린 주님의 옷을 찢어서 장난스럽게 나눠 가집니다. 

마가복음 15: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 강도 한 가운데 못박히심 

골고다에 도착해서 세운 주님의 자리는 강도들의 한 가운데 였습니다. 

살인도, 강포도 행치 않으신 주님이 강도들의 한 중간에 자리하십니다. 

강도 중의 강도, 사형수 중의 사형수가 되신 것이죠. 날강도가 되신 것이죠. 

모진 고문으로 피로 범벅되신 주님, 육신의 질고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수치와 모욕이 정점에 달하였습니다. 

 

(3) 조롱하는 무리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29-32절에 보면, 무리들의 조롱이 이어집니다. 

머리를 흔들고, 주님의 예언을 비아냥거리고, 희롱합니다. 32절만 보아도, 

마가복음 15:32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어느날 제가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박서진이 아버님되세요? 서진이가 많이 모자르네요. 애비노릇 잘하셔야겠어요.”

그런다면, 듣는 제 마음이 어떨까요? 

 

참된 왕이신 주님의 존재를 비하하고, 그분의 능력을 멸시하는 

이 무리들이 그렇게 주님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설교자로서 정말 죄송한 표현인데요,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2. 억지로 진 십자가 

세상에 이토록 잔인한 아침이 또 있었을까요?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십자가의 길에 떠오르는 태양빛은 

주님의 수치스런 얼굴을 더 낯뜨겁게 하였습니다. 

 

주님을 더 낯 뜨겁게 하는 또 한 사람이 나옵니다. ‘구레네 시몬’입니다. 

마가복음 15:21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그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북아프리카에서 예루살렘까지 올라온 시골사람이었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그에게 군인들이 허름한 행색의 그에게 십자가를 지게 한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는 그저 사형수의 형벌기구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군병들이 강요할 때, 그는 강요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되신 예수님께서 육신의 탈진을 보이신 것도 수치이건만, 

이 구레네 시몬이 이 십자가를 지고 싶어 하지 않은 것, 

마지못해 지는 그의 억지도 주님께는 모욕감이었습니다. 

 

3. 가장 고상한 분 예수님

그토록 잔인한 수치가 이 하루 동안 장마비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형언할 수 없는 모욕을 다 감수하십니다. 

그러나 엄살하지 않으십니다. 억울해 하지 않으십니다. 

묵묵히, 침묵하시며 수치와 모욕의 십자가를 짊어 지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메시야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으십니다. 

마가복음 15:23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왜 그러셨을까요? 

주님은 자신의 십자가 대속이, 거룩한 제물되심이 

마약으로, 포도주로 희석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 수치와 고문, 육체와 정신의 모든 고통이 경감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온전히, 완전히 감당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4: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결론

오늘 우리 주님이 완벽한 장난감이 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장난감이 되셨습니다. 

이로 인해 저와 여러분을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처럼 복된 존재입니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우리 인생이 얼마나 귀한지 아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 닮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돈이 많아서, 똑똑하고 잘나서가 귀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죄인을 더 교만하게 하고 천박하게 할 때가 많아요. 

 

저와 여러분을 지으시고 택하신 하나님, 우리는 그분의 형상입니다. 아들입니다.  

이것을 확증해 주신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주님이 오늘 받으신 수치와 모욕입니다. 

 

죄 짓고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하는 아담과 하와를 덮어주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덮어주신 가죽옷이 바로, 우리 예수님의 피값이었습니다.

 

이 구레네 시몬도, 참으로 부끄러운 이름입니다. 

십자가를 기꺼이 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 십자가를 기쁘게 대신할 수 있었을까요?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걸머맺지만, 주님은 그에게 복주십니다. 

그의 가정을 귀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로마서 16:13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바울 사도가, 성경이 언급하고 복주신 이 루포가 바로, 이 시몬의 아들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소중한 존재입니다. 고귀한 존재입니다. 

죄로 인해, 죄의 수치와 오염으로 인해 더럽고 비루한 개와 같던 우리, 

거지 같은 인생을 만들어 주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신 고귀하신 우리 주님이 장난감이 되셔서, 수치를 뒤집어 쓰셔서 저와 여러분을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값지게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귀한 주님, 소중한 주님을 만나고 자신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결단합니다. 

빌립보서 3:7–9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20202년 고난주간, 주님의 고난이 우리에게 온전히 되살아나기 위해 

이 수치를 변하여 고귀함이 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십시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 하지 맙시다. 

그것 만큼 못난 것이 없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택함받은 우리는 그야말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치신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비교하고, 줄을 세워서 좀 더 나아 보이는 것으로 자신을 지키려 합니다. 

우리도 그런 평가에 길들여 지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나를 귀하다 하신,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으시고 의로 목욕시켜 주신 주님, 

세상에서 가장 귀하신 그 이름,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 찬송 : 90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내가 예수를 못박았습니다 (어노인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