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7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2일] 악인의 방식 vs 의인의 방식 막 14: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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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4:43–52
43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5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 도입
고난주간 두 번째 날 이 새벽에도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을 말씀 제목은 ‘악인의 방식 vs 의인의 방식’입니다.
악인과 의인, 그 정체성이 뚜렷이 대비되듯이
이 두 부류가 생각하는 양식, 선택하고 결정하는 양식 또한 판이하게 다릅니다.
따라거 그들 삶의 결과와 책임 또한 완전히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 서론
오늘 성경 본문에 여러 사람들이 나옵니다.
예수님, 열 두 제자들,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 또한 이들과 결탁된 군대입니다.
이들 가운데 누가 악인이고 누가 의인일까요?
누가 악에 속한 자들이고, 누가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자일까요?
말씀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 본론 :
악인의 방식
먼저 악인의 방식입니다.
(1) 악인들
자, 보십시오. 누가 악인입니까?
예수님을 사로잡아가는 대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 이들이 악인입니다.
복음서에서 이 세 부류는 항상 주님과 대립하였습니다.
주님을 의심하고 비방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거슬렀습니다. 주님의 행하심을 폄훼하였습니다.
그들을 향한 주님의 탄핵은 그들이 자초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8:44절에서 주님은 그들의 출처를 밝히십니다.
요한복음 8:44 (NKRV)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이들은 항상 한결같이 주님을 거스르며 살아온 자들입니다.
그 결말이 바로 오늘 이 모습이죠.
끝내는 예수님을 체포하고 사형장으로 끌어갑니다.
이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 무리들이 주님을 거스를 수 밖에 없는,
그들이 평생 악을 행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렇게 그들이 평생 살아온 악인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체로 악의 존재, 악의 화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돈 맡은 자,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가룟인 유다도
이 악의 무리에 속하여 있습니다.
(2) 악인의 방식 : 불법, 조작, 폭력, 도피
이들이 오늘 본문에서도 살아가는 방식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악인의 방식은 조작, 폭력, 도피, 불법입니다.
A. 이들은 조작적입니다. 악을 도모하고 악을 꾸밉니다.
시편 1: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악인들은 늘 그 동류들끼리 술집에 모입니다. 거기서 악한 술책을 도모합니다. (메시지성경)
오늘 본문에서만도, 얼마나 이들이 악을 도모하고 있습니까?
이들은 이미 예수의 추종자중 최측근, 12제자중 한 사람인 가룟인 유다와 결탁하여
체포 작전을 수립하였습니다.
이들은 미리 암호를 짰습니다. 44절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작정한 때에 약조한 대로 유다가 “랍비여” 호칭하고, 예수님께 입을 맞춥니다.
B. 또한 이들은 폭력적입니다.
보십시오. 오늘은 그들은 군대로 왔습니다.
원래 로마의 속국민이었던 유대인들은 사적 군대를 채용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18:12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로마 군대가 동원된 것입니다.
43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폭력과 살인을 위해 존재하는 이 무리들은 이미 검과 몽치로 무장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단지 군대 수하로서 악에 수용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아히히만> 이란 책이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 부역한 독일 장교 오토 아돌프 아히히만이 수십년의 세월을 건너 유태인의 법정에 섰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입니다.
당시 그는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라고 자신을 변호합니다.
그러나 유태인 판사는 물론, 세계의 법정은 “악의 평범성”도 악이다 란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악한 행동만 악한 것이 아니라, 악한 동기까지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지극히 악한, 숙고되지 않은 악한 동기까지도 악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 로마 군대도 정치 지도자 빌라도와 종교지도자 제사장 장로 무리들에 단지 부역한 것이 아니라, 악과 결탁된 동조된 악한 무리였습니다.
결국, 이들도 폭력적 분위기로 조성된 환경에서 주님을 체포하고
실제로 예수님께 폭력을 행사합니다.
44 ...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6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어 물리적으로 강압을 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저항할 거라 지레 짐작하고 단단히 묶어 탈출을 방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자유를 구속하여 자신들의 의지대로 주님을 끌어갑니다.
이후 빌라도의 관정에서도 모진 매질과 고문을 행합니다.
골고다에서도 머리를 치고, 침을 뱉고, 조롱합니다.
연일 뉴스에 보도되는 N번방 사건, 정치인들의 무모한 언어 폭력, 상대 비난
이 모든 것이 다 폭력입니다.
이 상황에 곁에 섰던 한 제자 역시 악에 동조합니다.
갑작스런 상황에 검을 빼듭니다.
47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요한복음 18장 10절은 이 상황을 이렇게 증거합니다.
10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여기 곁에 서 있던 한 제자는 베드로임에 틀림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행동 역시 악한 행동이란 것입니다.
그가 말고에게 가한 폭력 자체도 악이거니와 폭력의 동기가 바로,
자신의 본성을 제지하지 못한 정욕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일찍이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위대한 칭찬을 받은 이후에 주님이 자신이 가시는 길을 말씀하시죠.
마태복음 16:21–24 (NKRV)
21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그러나 이 때에도 베드로는 십자가의 길을 대적합니다.
22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겟세마네의 기도가 생략된 사람, 기도로 본성을 억제하지 못하면
결국 우리도 악에 동조하게 됩니다.
폭력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기도가 하나님의 의를 이룹니다.
마 26: 52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C. 도피
거듭되는 악으로 인해 또 한 방식의 악이 파생되고 있으니, 바로 도피입니다.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동참하고 있었던 제자들, 이들도 역시 베드로처럼 기도생활이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십자가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주님의 기도에도 동행하지 못했습니다.
십자가 앞에 누가 크냐고 다투던 자들이었습니다. 십자가를 고민하시는 주님 앞에서 주님의 나라가 임하시면 주님 보좌 우편, 좌편에, 저희를 앉혀 주십시오 청탁이나 하는 자들입니다.
결국 자신들의 뜻이, 명예욕이 실현될 수 없다고 판단되자, 그들이 선택한 것은
도피였습니다.
50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D. 불법
이 모든 악들이 모두 불법입니다. 성경의 방식, 하나님의 뜻을 역행한 것입니다.
이 불법으로 인해 주님이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습니다.
이 모든 악은 주님께서 이미 예고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21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사도행전 1:16–18 16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배신자 가룟 유다나 이 종교지도자들이나 매한가지인 것은, 이들 모두 주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음 없음은 결국 악입니다.
이들이 종교지도자, 소위 유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말하며 가르치며 성경을 기록하고 예배를 집례하며 공회, 지금의 당회를 주관하는 자들임을 기억하십시오.
유다가 어떤 자입니까? 주님과 3년을 동행 동거하며 주님이 어떤 분인지 뼛속깊이 아는 자입니다. 방금전 주님이 자신의 발을 씻어 주시고, 주님이 찢어주신 유월절 떡과 잔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 만찬에 동참한 불법하게 주의 떡과 잔에 동참한 자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1:27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결국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는 자들이 다 이 무리들입니다.
또한 내일 본문에 나오는 대로 이들은 불법하게 주님을 십자가에 내어 줄 것입니다.
의인의 방식 예수님
그렇다면, 의인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이처럼 장황하게 진술된 악인의 방식과 정반대되는 길입니다.
악은 궤계를 꾸미고, 조작하고, 정욕과 폭력을 부립니다.
의인의 길은 수용하는 길입니다.
무엇을 수용합니까?
바로 성경 말씀,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는 것이 바로 의인의 길입니다.
마가복음 14:49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성경을 이루십니다.
예수님의 방법, 십자가의 길이 바로 의인의 방식입니다.
종교지도자들, 정치지도자들이 주님을 죽음에 내어줄 것도,
제자들이 배신할 것도, 주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이것이 다 성경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본심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3: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결론 :
의인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길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자기 부정의 길,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갑시다.
제자들은 흩어지고 도망하여, 주님 홀로 가신 십자가의 길이지만,
구레네 시몬처럼 일지라도, 주님 곁에서 기도의 길, 순종의 길 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는 버림받고, 세상에서는 배제되지만,
주님의 길이 생명길이고 진리의 길입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니 성도 대답하였다.
고백하며 찬송하며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 찬송 :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