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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9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4일] 주일마다 되내이는 그 이름 막 1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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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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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5:1–15

 

1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6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 도입  

고난주간 넷째날 새벽, ‘주일마다 되내이는 그 이름’ 

주일 예배의 서두에서 반드시 한 번은 불러야만 하는 그 이름 누구죠? ‘빌라도’ 

빌라도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요즘 같은 봄날에 아름드리 꽃을 보며, 읖조리는 시 한 편이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 이라는 시의 서두입니다. 

 

 

빌라도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빌라도와 나는 나에게 꽃이 되는 이름인가? 

1년에 52번이나 부르는 이름이면, 

모태신앙으로 80년동안 산다고 하면 4000번이상 부르고 생각해야 할 인물이라면, 

빌라도 그는 나와 아주 상관있는 인물입니다. 

▣ 서론

‘빌라도’ ... 하면 그냥 빌라도도 아니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에요 ... 

사도신경 라틴어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수난을 받으시고’ 에요. 

수난을 받으신 것도 모자라, 빌라도의 치하에서 , 빌라도 아래에서 .. 

 

누가요? 주님께서요... 

그래서 우리에게 빌라도란 이름은 불쾌한 이름입니다. 

 

 

▣ 본론 : 

왕과 총독 

주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그 밤,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불법적 종교재판을 받으신 그 시각, 어스름 새벽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내가 그니라” 어두운 밤에 진리의 빛을 비추신 주님의 새벽은 

또 다른 어두움을 직면하십니다. 바로 로마 총독 빌라도의 관정입니다. 

분봉왕 헤롯의 궁전에 속해 있는 빌라도의 재판장 앞에 주님은 무릎꿇으셔야만 했습니다. 

온 세상의 왕께서, 온 세상의 군주께서, 

로마의 황제도 아닌 한낱 지방 총독 앞에 엎드리셔야만 하는 광경이 펼쳐집니다. 

막15: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어제 설교 제목이 ‘부끄럽지 않은 십자가’ 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롬 1:16에서 (롬 1:16, 개정)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로마서라는 편지를 쓰면서 왜 그는 당당히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라고 기록하고 있을까요?

역설적으로, 로마라는 존재가 그만큼 두렵고 위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당대 로마는 지금의 미국 중국과는 비교가 안 될 더 위대한 제국이었습니다. 

로마라는 이름이 붙은 군대, 체제, 문화 ... 가히 온 세상의 최고였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고 고백하지요. 

로마를 생각하면, 바울도 잠시 위축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보면, 나사렛의 33살 청년 예수가 로마 총독 빌라도를 알현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영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빌라도 앞에 무릎꿇고 있는 이 분은 단지 나사렛의 한 청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왕 중의 왕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입니다. 

 

 

2. 빌라도의 고민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즉각 빌라도에게 넘긴 것은, 자신들에게 판결을 시행할 권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막15:3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요한복음 18:31 (NKRV)

31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이들은 빌라도에게서 즉각 처형 판결이 내려지길 바랬습니다. 

거짓의 자식인 자신들처럼, 빌라도가 위증과 거짓을 덮어버리고 졸속으로라도 처결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말로 분위기를 몰아갑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원한 것은, 공식적인 증언이었습니다. 

종교적인 죄목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로마법에 근거해서 저들의 고소가 합당한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막15: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이해관계에 있어 종교지도자들보다 한 걸음 멀리 떨어져 있는 빌라도는 

피고인 예수님의 변론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막15:4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이 때까지는, 종교지도자들의 고소보다 명확한 사실 관계를 알고 싶어 한 듯 합니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바로, 그의 고민 지점이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빌라도 역시 자신의 이성과 양심에 비추어 여기 이 예수라는 피고에게서 아무 죄목을 찾지 못합니다. 

[눅23:14]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눅23:22]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요19:6]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그래서, 빌라도는 이 예수에 관한 고소건이 가볍게 마무리되길 원했습니다. 

빌라도는 계속해서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 이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 무리의 악함도 알고 있었습니다. 

막15: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빌라도는 사실 관계는 알았지만, 진정 예수님이 유대인이 왕이시란 사실, 

세상 나라의 왕과는 전혀 다른 왕이심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기까지만입니다. 딱 여기까지만요. 

빌라도 또한 정치인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지금부터 빌라도가 매 주일 마다 우리에게 비난받게 되는 지점이 나타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사형에 내어 준 것입니다. 그는 정의의 편에 서지 않고 불의의 손을 들어 줍니다. 그러면서도 아주 간교합니다. 

자신이 판결하면서도, 마치 유대인들의 요구에 마지못해 응한 것처럼 책임을 피합니다. 그것이 바로, 바라바라는 인물을 등장시킨 것이죠. 

예수님과 달리 바라바는 폭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살인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 사면의 전례에 예수님과 같은 위치로 바라바를 등장시킨 것입니다. 바라바는 자신을 왕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았고 예수님처럼 추종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폭력도, 살인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지금 사형수 바라바와 동격이 되었습니다. 이 자체가 빌라도가 예수님을 사형수로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제사장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이 기다리던 바였습니다. 

막15: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순간, 분위기는 아주 험악해 집니다. 무리가 흥분한 것입니다. 

군중 심리를 잘 이용할 줄 아는 정치가 빌라도는 이 상황을 아주 잘 활용합니다. 

막15: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막15: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결국, 빌라도가 어떤 인물인지가 15절에 결론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막15: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3. 네 말이 옳도다 

참으로 가슴 아픈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빌라도의 악한 처신을 하나님은 구원의 방편으로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거듭된 빌라도의 질문에 주님의 답은 이것입니다. 

“네 말이 옳도다.” “네가 이미 말하였다

악인들의 중심에 계신 예수님은 

 

 

이 지점에서 빌라도가 고맙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진리, 예수님의 구원을 이끌어 낸 공로가 있지 않습니까

 

 

물론, 분노합니다. 화가 나고 눈물이 납니다. 

이 불의한 재판, 무도한 재판장 빌라도로 인해 예수님이 사형장에 넘겨 지십니다. 

십자가에서 죽게 되십니다.

주님에게는 고통인 이것이 저와 여러분에게는 은혜입니다. 은총으로 주어졌습니다. 

빌라도의 무도함으로 인해, 주님이 저와 여러분의 대속을 치르게 되셨습니다. 

 

 

오늘 빌라도의 면면을 보면서, 우리가 그에게 분노만 할 수 있을까요? 

그와 우리가 크게 다를까요? 

본질상, 우리 역시 원수요 반역자입니다. 하나님께 대해 그렇습니다. 

▣ 결론

빌라도처럼, 진리보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고 두려워할 때가 우리에게도 얼마나 많습니까

빌라도처럼, 하나님의 거룩보다 우리의 정욕과 이기심을 충족시킬 때가 얼마나 많아요? 

그래서 우리는 빌라도를 되내일 때마다, 욕하고 싶을 때마다, 

우리도 그와 같은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신경의 구절 속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보세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가 아니라, 

본디 죄인인 박유경에게 ... 본디 죄인인 ○○○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은혜가 몰려오지 않습니까? 

죄인인 나에게 고난을 받으시되, 죄인인 날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그 예수님 ...?

빌라도를 치하에서 수난당하셨지만, 궁극적으로는 빌라도를 넘으셔서(pass over)하셔서 온 세상의 왕이되신, 온 우주의 통치자되신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 나라의 평안과 안식을 꿈꾸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시다. 

 

 

빌라도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빌라도가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빌라도의 십자가 판결이 저와 여러분의 무죄 선언이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하나님의 재판정 앞에 서게 됩니다. 

주님 재림 하시고 천상의 재판정이 열릴 것입니다. 

어린양 보좌, 주님의 보좌 앞에서 우리 역시 심판을 받습니다.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담대하십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받으신 주님, 

빌라도로 인해, 나로 인해 수난당하신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님의 구원이 임하였습니다. 나의 모든 죄를 사랑과 용서로 초월하신 예수님 때문에, 

의의 판결 받을 줄 믿습니다.  

죽음의 가시관이 아니라,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 찬송 : 415 십자가 그늘 아래 나 쉬기 원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