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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6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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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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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매일성경]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은 무엇입니까?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15: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고전15: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고전15: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고전1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전15: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고전15: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고전15: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고전15: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전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고전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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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오늘을 살게 하는 힘, 

성도의 현재와 미래에 주께서 어떤 소망을 주는 지를 전해 주십니다.

 

1.반전의 은혜

첫 번째는, 반전입니다.

먼저,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습니다.

 

원래 우리 운명은 죽을 운명입니다.

인간 모두는 죽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결핍과 슬픔 많은 이 세상 현실에서 고통하며 끝내는 죽음을 향해 운명 지워졌습니다.

인류의 대표이자 조상인 아담의 죄가 우리를 죽음의 길에 세웠습니다.

그가 완전한 천국인 에덴에서 자신과 인간 후손을 몰아냈습니다.

그래서 삶이 생명이 아니라 죽음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그 운명을 뒤집으신 것입니다.

고전15: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것이 바로, 우리 구원의 핵심입니다.

주님이 생명의 씨가 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주님을 믿음으로 그분께 붙은 죽음의 씨들을 살리시고 수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이신 것입니다.

 

2. 시대적 종말의 은혜

이어 바울 사도는 어떤 시점들을 나열합니다.

(1) 주님의 부활의 시점, (2) 주님의 재림의 시점이 그것입니다.

 

(1) 주님이 부활하신 시점은 우리 운명의 반전이 일어난 시점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와 마찬가지의 시점이죠.

우리가 부활절에 기념하는 것은, 주님의 부활로 우리의 생명, 영생의 시초임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2) 주님의 재림의 시점은 우리의 영생을 완성하는 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생명의 시초라면, 재림은 영생이 완성되는 종국입니다.

이것을 ’시대적 종말론‘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활을 부정하는 고린도의 세상 지혜자들은 영혼/육체 이런 이분법으로 부활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성경 전체의 전개 방식인 구원의 역사, 구속의 연대(시점)를 제시함으로써 우리 성도의 부활을 확증합니다.

이 재림의 시점에 어떤 차례들이 있습니다. 순서가 나열되고 있죠.

 

a.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열매‘ 로서 부활하십니다. (23a 이미 이루어진 부활)

b. 재림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22절)이 부활합니다

(22,23b, 아직, 기다리는 부활)

고전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c. 그 후에 끝(종말)이 옵니다.

고전15: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종말의 때에 주님께서 한시적으로 대행(25)하시어 이 땅에서 구원 사역을 감행하신 왕권을 하나님 아버지께 넘겨 드립니다. 시 110:1의 성취입니다.

시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고전1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이 한 줄로 증거된 영적 전쟁의 과정과 결말이

요한계시록에 상세히, 그리고 처절히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구원, 부활이 얼마나 위대한 대가를 치르신 구원인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감탄하며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3. 부활을 기대하며 삽시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원에 감사하며, 부활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불신의 시대, 무신의 이 시대는 마치 현실이 천국인 것처럼 여기며 삽니다.

고전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부활에 대한, 영생의 소망이 없기에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죠.

 

이런 삶에서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이 웰빙, 건강 이런 것들입니다.

성형외과에서 얼굴을 고치고, 피부과에서 보톡스니, 필러니 하는 것들로 자기를 꾸미고 하는 이런 허영들,

아침 TV 프로그램을 도배하는 건강 관련 식품들, 프로그램들,

밤에는 쾌락과 재미로 정신을 도발하는 수많은 것들 ...

 

이 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음 없는 우리 조상들도 그랬어요.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죽은 정승이 산 개 만도 못하다

거꾸로 매달아도 사는 세상이 낫다.

 

이전에 도시 교회에서는 어떻게 목사님 앞에서, 보톡스를 했니, 필러를 했니 ...

그런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해요 ..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에게 보톡스가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더욱 기대하고 꿈꾸어야 할 이상의 세계는 부활의 세계입니다.

천국에서 경험하고 누릴 영원한 세계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그 영원의 세계를 미리 맛 보며, 준비할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으며 영생을 누리며  사는 사는 삶입니다.

우리에게 구원과 부활을 가져다 주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잘 믿으며

예배의 삶,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가지로,

(1) 성례(세례, 성찬)에서

(2) 영생을 누림으로,

(3) 몸의 부활을 사모함으로,

 

(1) 세례와 성찬은 몸의 부활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고전15: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죽음에서 일어났음, 살아났음을 의미하는 세례의 날을 상기하고

아직 믿지 않은 자녀들에게 세례의 참된 의미를 잘 가르쳐야 합니다.

 

성찬을 통해서도 우리는 예수님의 몸과 연합하며 영혼과 육신의 힘을 얻습니다.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그리스도 죽으심 뿐만 아니라,

육체로 다시 오심을 믿음으로 선포하며 영혼과 육신의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2) 영생을 누림으로

그렇게 예배와 구원의 기초인 세례와 성찬을 통해 영생의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우리 영혼을 각성하고, 육신을 쳐서 주님께 복종하는 지금 이 시간도

영생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또한 부단히 우리 삶 속에서, 영혼의 생명을 기억하고 장려해야 합니다.

고전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고전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3) 몸의 부활을 사모함으로,

고전15: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전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전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신령한 몸‘

우리 육신은 늙고 병들고 쇠약하면 결국 다 썩을 몸입니다.

화장장에서 태우고 나면 남은 것이 재밖에 없습니다.

특히 영생이 없는 자연인의 몸은 연약할 뿐만 아니라 욕된 몸입니다.

과도히 건강에 집착할 이유가 없습니다.

 

교회 역사의 걸출한 인물들인 청교도들은 한결같이 그 몸을 헌신하다 단명했습니다. 

 

성도의 몸은 재림의 날 주님과 영적으로 결합하고,

주님이 바꾸시는 몸, 변화시키는 몸입니다.

재림의 날에, 가장 아름답고 신령한 몸, 영적인 몸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우리 몸을 그런 차원에서 바라보며 신령한 몸으로 다시 태어날 것, 변화될 것을

늘 사모하면서, 우리 육신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현실의 삶에 대해 죽고, 영생에 대해 살아나는 삶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오늘도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